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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 저자구정우
  • 출판사북스톤
  • 출판년2019-07-29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12-0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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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말하는 그것, 인권일까 차별일까?”

    인권전문가 구정우 교수가 말하는

    나의 인권과 당신의 인권이 웃으며 싸우는 방법



    “한 씨는 정신병원 원장이다. 그는 최근 병원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넘겨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받았다. 지난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사고가 2배 이상 늘었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운전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교통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한 씨라면 경찰요청에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정부는 20××년까지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종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DNA 분석을 통해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범죄식별 및 질병연구에 큰 도움이 되므로 승인되어야 할까요?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철회되어야 할까요? 당신의 의견은?

    - 〈인권감수성 테스트〉 문항 중





    우리가 말하는 그것, 인권일까 차별일까?



    뉴스 보기 두려운 세상이다.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해 국민의 공분을 불러오는 가운데, 사회면에는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사람들이 저지른 흉악범죄 소식이 들려온다. 심란한 기사의 댓글창에는 기사 못지않게 거친 논조의 댓글이 오간다. 최근 사회적 화두가 된 성평등 이슈에는 서로를 ‘쿵쾅이들’과 ‘한남’이라 욕하며 기사와 상관없는 입씨름에 열을 올리고, 강력범죄 소식에는 한결같이 ‘내 혈세가 아깝다’며 ‘당장 사형시켜라’라고 입을 모은다. 가해자 인권 보장하느라 피해자들만 더 억울해지고,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챙겨주느라 국방이 위험해지고, 난민 보호하느라 정작 국민들은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인권이 문제라고 성토한다.

    혐오표현, 갑질과 괴롭힘, 페미니즘,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상당수는 실제로 ‘인권’과 연결된다. 인권을 더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인권 타령하느라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지금은 과거보다 인권교육이 강화되고, 인터넷 창만 열면 인권 이슈와 토론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인권에 관한 지식이 상식이 되어가고, 인권지식이 ‘교양인의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보면 연민이 생기고, 그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며 뿌듯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의 인권은 과연 좋아지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인터넷 댓글창의 수많은 비하와 혐오표현이 그것을 입증하고, 장애인 자녀가 다닐 학교를 지으려 무릎 꿇은 학부모들의 읍소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난민을 수용하자는 호소에 ‘잘사는 너희 집에서 거두라’는 비아냥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왜 이렇게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개인의 인권보다 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은 인권에 둔감한 사람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며 차별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 인권만 외치며 다른 이슈는 외면하는 차별을 행하기도 한다. 개인의 처지와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받기 위해 인권 개념이 생겨났건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인권을 둘러싼 크고 작은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의 인권과 당신의 인권이 웃으며 싸우는 법



    인권이 실질적으로 우리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처럼 꼬여버린 매듭을 풀어내야 한다. 상대의 말과 처지에는 귀와 눈을 막은 채 자기 논리만 내세워서는 분열이 일어날 뿐이다. 지금은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주장하게 된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인권 관련 주제들을 골라 담았다. 범죄자 인권, 난민 문제, 젠더 전쟁 등 하나같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인권사회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이들 이슈에 대한 주장과 반론을 담고, 서로의 입장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서로의 관점을 균형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관련 연구와 해외사례를 소개해 각종 사안을 좀 더 깊고 넓게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가 중요한 기반자료 역할을 한다. 2015년에 만든 인권감수성 테스트는 론칭 한 달 만에 2만 명이 참여해 화제를 낳았고,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과 성인들까지 4년간 약 6만 명이 테스트에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숫자로 보는 인권’을 만들어 인권자료와 정보를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등, 연구실에 갇힌 인권이 현실과 만나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요즘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인권을 높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고, 내가 겪지 않은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중요하다. 허울 좋은 지식의 묶음이나 그럴싸한 국제적 규범으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어려운 사고와 선택을 통과해서 우리 일상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권감수성은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뜨거운 논쟁도 좋지만,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과 머리로 사회적 이슈를 대한다면 서로를 가로막는 오해와 편견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대립과 혐오를 피하고 서로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과 함께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웃으며 싸우는 법’을 익힐 때, 비로소 인권이 우리 삶에 편안히 자리할 것이다.





    책 속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2017년 11월 29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2월 3일 오후 1시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가두행진과 집회를 개최한다는 집회시위 신고서를 접수했다. 종로경찰서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교통통행에 심각한 불편이 초래되고 안전사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행진 구간을 제한했다. 특히 대통령 관저로부터 100m 이내인 효자동 삼거리 통과구간에서는 행진과 옥외집회를 할 수 없다고 금지했다. 청와대 100m 근방에 대규모 시민들이 모일 경우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뒤는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죠. 서울행정법원은 헌법 제21조제1항이 국민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 처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사전신고제의 취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는 점도 덧붙였죠. 법원은 비상국민행동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집회, 시위가 제한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효자동 삼거리를 포함한 특정 구간의 행진에 대해서는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인근 주민들의 주거권과 통행권을 보장해야 하므로 일몰시각인 오후 5시 14분에 집회와 시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국민들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했지만, 사실 이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100m 앞에서 집회가 열린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요 경호시설 100m 이내에서는 집회할 수 없게 한 현행법을 감안하면, 시위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거리이지요. 과거에는 경찰 차벽이 수시로 등장해 광화문 일대와 청와대 진입로를 막아서지 않았던가요.

    다행히 국민들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평화롭게 행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 앞에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 인근은 손팻말로 상징되는 1인 시위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기자회견도 종종 열립니다. 인권 경찰로 변하리라 다짐한 경찰은 단속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입니다. ‘대통령 경호법’을 들어 규제로 일관했던 청와대 경호실도 한걸음 물러섰습니다.

    당시 담당 판사는 분명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수많은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갔을 겁니다. 혹시 성난 군중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해 대혼란이 야기되지 않을지, 일몰 이후에 자진 해산하지 않아 인근 주민들의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을지,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반드시 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해야 하는지.

    선택은 어려웠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극대화되었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시민적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판사 한 명의 인권감수성이 우리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죠. 집회와 시위의 ‘과잉사회’에 살고 있다고요. 아침 일찍부터 울려 퍼지는 구호와 노동가요에 아침잠을 반납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평온한 주거권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혹시 시위대의 인권이 또 다른 차별을 낳는 건 아닐까요?

    - 1장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많아지면 인권이 좋아질까?



    난민 문제를 다룰 때에는 유독 인도주의적 관점, 인간의 보편적 정서 등 누구도 섣불리 반박하기 어려운 ‘좋은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난민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인종차별주의나 혐오주의자여서 난민을 배척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막연한 인권이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 때문에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법을 만드는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난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반 국민이라는 점에서 반발이 더 큽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검토 없이 무작정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이상론적인 접근이라는 것입니다.

    - 2장 그들에게 우리의 나라를 빼앗긴다면?



    2018년 10월에 〈네이처〉 지에 실린 흥미로운 연구논문 한 편을 소개합니다. ‘생사를 다루는 선택 : 두 가지 악마 중 덜한 것 고르기’라는 주제입니다. 여기 ‘도덕적 기계(moral machine)’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계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뜻하는데요, 브레이크가 고장 나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수 없을 때 핸들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핸들을 조작한다는 것은 곧 보행자 중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희생시킬지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훗날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도덕적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앞서 소개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사고실험 사례와 비슷하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마이클 샌델의 사고실험은 말 그대로 실험이지만, 이제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실제로 이런 판단기준을 프로그래밍해서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알고리즘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는 실제로 누군가가 희생되겠죠.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윤리실험에 전 세계 230만 명이 참여해 13개의 문항에 답했습니다. 노인보다는 어린아이를 구하고, 무단횡단하는 이들을 희생시키고, 동물보다는 인간을 살리고… 대체로 한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국가에 따라 답변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 문화권의 차이를 들여다볼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항목이 있습니다. 개보다는 고양이가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어떤 이유 때문일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고양이보다 더 많이 지목되는 희생양이 있었습니다. 바로 범죄자였습니다.

    개와 고양이 간에 어떤 선택의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려동물과 범죄자를 가르는 선택기준은 오히려 쉽게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범죄자는 인간도 아닌 존재, 아니 말 그대로 ‘금수禽獸만도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나 봅니다. 그리고 머잖아 AI가 얼굴만 보고도 범죄기록을 판별할 수 있다면, 범죄자는 개와 고양이보다 먼저 희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도덕적 판단기준’에 따른다면요.

    - 3장 ‘금수만도 못한’ 자들에게 인권이란?



    2018년 12월에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이런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YTN 의뢰로 전국 성인남녀 2509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29.4%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매우 비판적인 60대 남성 지지율 34.9%보다도 한참 낮을 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별 남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반면 20대 여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63.5%로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인 40대 여성(61.2%)의 지지율보다도 높았습니다.

    이 차이를 좀 더 도드라지게 말씀드려 볼까요? 60대 남녀의 지지율 격차는 2.6%p, 50대 남녀는 5.3%p, 40대 남녀는 0.8%p에 불과했습니다. 30대 남녀도 거의 차이가 없고요(0.3%p). 그런데 20대 남녀의 격차는 무려 28.6%p입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이례적인 통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격차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같은 시기에 실시된 페미니즘 지지도 관련 조사가 있었습니다. 역시 리얼미터가 조사했다고 합니다. 전국 성인 10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20대 여성은 64%에 달했던 데 반해 20대 남성은 14%에 그쳤습니다. 무려 50%p의 격차입니다. 30대 남녀의 격차가 11%p인 것과 비교되죠.

    두 개의 자료를 들여다보니 답은 비교적 쉽게 나오는군요. 20대 남녀의 정부 지지도 차이의 원인은 이 세대의 젠더 갈등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평등과 젠더 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접근법에 많은 20대 남성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에 비하면 취업문제,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임금하락,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거부감 등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요인에 불과합니다. 젠더 전쟁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통계자료입니다.

    - 5장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함께 살아가려면



    1988년 미국에서 중요한 판결이 있었는데요. 한 성인잡지사가 저명한 목사를 패러디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잡지사의 손을 들어준 사건으로(Hustler Magazine v. Falwell) 세상을 바꾼 판례의 하나로 꼽힙니다. 래리 플린트는 1970년대에 〈허슬러〉라는 남성 잡지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요. 당연하게도 성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급기야 1978년 3월 백인우월주의자가 그를 저격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죠.

    래리 플린트는 유명한 기독교 원리주의 지도자였던 제리 폴웰 목사를 패러디의 타깃으로 삼습니다. 1983년 11월호 〈허슬러〉에 실린 패러디 광고는 폴웰 목사를 성적, 도덕적으로 철저히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태리산 양주 캄파리 광고 인터뷰를 빗댄 것인데요. 캄파리의 첫 맛이 어땠냐고 묻는 질문을 잘못 이해한 폴웰 목사가 자신의 첫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추한 헛간에서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그랬노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도덕주의자를 근친상간자로 묘사한 것이죠. 그 밖에도 설교를 하기 전에 늘 캄파리를 마신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물론 광고 하단에는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작게 쓰여 있긴 했습니다. 패러디이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죠. 이쯤이면 명백한 명예훼손 아닌가요? 이런 표현이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 연방대법원은 8대 0 만장일치로 래리 플린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패러디인 경우 표현이 과하더라도 공인에 관한 것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결문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의 한 측면일 뿐 아니라, 진실의 추구와 사회 전체의 활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목소리가 중요한 공적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공인에 관한 것인 경우 특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허슬러〉의 패러디 광고가 과하고 비윤리적이지만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그보다는 폴웰 목사가 공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표현의 자유의 영역을 비교적 넓게 해석한 겁니다.

    - 7장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일까?



    블라인드 채용의 바탕에 깔린 인권의 정신, 즉 ‘평등과 차별금지’의 정신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그간 우리의 잘못된 관행들을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어민 영어강사를 구하면서 백인만 선호했던 관행이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일부 학원가에서는 원어민 영어강사를 모집할 때 여전히 ‘white person only(백인만 가능)’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지요?

    인종에 따라 영어 실력에 차이가 있을까요? 분명 아닐 겁니다. 이런 식의 차별을 ‘조선족’이나 동남아 출신 유학생들도 받고 있습니다. 평등과 공정성은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차별과 편견에 바탕을 둔 공정성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9장 공정한 채용을 위한 차별은 정당할까?



    ‘국가경쟁력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 국가들이 고용 및 해고가 쉬워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는 점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근로 형태를 인정하면서 산업과 직종에 따라 유연한 노동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고용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자의 각종 권익을 보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노동관련 법규와 제도를 꾸준히 개선해 노동시장의 효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지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며, 이것이 글로벌 트렌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처럼 고용·해고가 경직돼 있던 독일은 130위에서 1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영국 역시 61위에서 6위로 탈바꿈했습니다.

    선진국의 ‘두 마리 토끼잡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추세를 보면 우리나라도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하는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 있게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노동시장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사용자 측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너무 많은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유럽 선진국이 그러하니 우리도 해고를 더 쉽게 해야겠다고 말해야 할까요? 2018년 현재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33%가 이미 해고하기 쉬운 비정규직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권이 여전히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선진국이 되기엔 갈 길이 먼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 10장 파업할 권리와 불편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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