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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리스인 이야기 2

그리스인 이야기 2
  • 저자시오노 나나미
  • 출판사살림
  • 출판년2018-05-09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3-20)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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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이전에 위대한 그리스가 있었다!

    서양 문명의 원형, 민주주의의 창시자

    그리스인을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필생의 역작!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모태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세계를 향한 두 번째 여정!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읽는 그리스인의 역사, 그 두 번째 이야기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그중 둘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Ⅱ: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많은 부분에서 절정기를 이룬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조망한다. 그리고 아테네의 국운을 결정지은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아테네의 쇠퇴를 통해 그리스 세계가 급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는 그리스 세계를 양분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각축전을 배경으로 민주정치의 발전과 한계, 그리고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황금시대,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를 양분하는 강국이 되었다. 과두정치의 스파르타는 “변하지 않고 갈구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아테네는 달랐다. 민주정치를 운영하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길 원했고,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길 바랐다.

    기원전 461~기원전 492년까지 아테네의 발전은 눈부셨고 민주주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실현된 일이 없을 만큼 원활하게 작동”했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했다. 아테네는 명실상부 델로스동맹의 맹주였고, 수도에만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으며, 대부분의 도시국가가 1척도 운용하기 힘든 삼단갤리선을 200척이나 운용하는 등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했다. 또한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하고 매년 축제, 경기, 연극제를 개최하는 등 문화와 예술 융성에도 힘을 쏟으며 ‘그리스인 모두의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아테네는 어떻게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황금시대’를 맞이하며 번영과 풍요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리스인 이야기 Ⅱ』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성장 원동력과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정을 담당하는 최고 직위 ‘스트라테고스(Strategos)’에 32년 동안 연속으로 당선되면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리더 페리클레스는 민주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을 통합시키고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테네 사회의 가장 아래에 외치한 노동자계급의 생활을 보장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 것이 그중 하나다. 그리고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이들 동지중해 3대 강국의 리더는 비슷한 시기에 군주 지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양식(良識)을 지닌 자들이었다. 이들은 국제관계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며 전쟁을 피했으며 설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위험을 막았다.

    아테네는 이런 평화 유지 노력과는 별개로 강력한 해군력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델로스동맹을 견실하게 유지했다. 바다가 안전해지자 그리스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아테네의 식량 수입로도 안전해졌다. 또한 육지의 안전도 도모했는데, 아테네는 외항인 피레우스 항구와 성벽을 잇는 일체화 작업을 통해 외적의 침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경제 센터로 변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안전이 확보되니 돈과 사람과 물자가 몰리면서 투자와 교역이 활발해졌고 덩달아 예술과 문화도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 이야기 Ⅰ』에서 아테네의 개혁이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은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비로소 완성에 다다른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테네인들의 현실적 요구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과제이다. 이 책이 그리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발전상을 들여다보면 내일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최대 적은 그리스 자신이었다!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쇠락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다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뒤 48년간 그리스인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는데 특히 아테네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하였고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무조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테네는 강제로 스파르타의 동맹국이 되었고, 델로스동맹은 해체되었으며, 막강했던 해군력은 소멸되었다. 아테네와 피레우스 항구 일체화가 파괴되어 거대한 통상 센터로서의 기능과 위용마저 상실해버렸다. 무엇보다 강제로 민주정치를 포기하고 과두정치로 이행해야 했다.

    아테네가 100년 동안 유지해온 그리스 세계의 패권과 민주정치를 상실하고 쇠락하게 된 것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테네의 추락을 아테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그리스 전체가 패했다. 자기들이 쌓아 올린 가치관을 스스로 붕괴시킨 것”이라고 평했다. 과연 아테네와 그들의 민주주의는 어떤 과오와 한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기원전 430년 페리클레스는 전쟁, 난민, 역병의 책임과 공금 악용이라는 이유로 스트라테고스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숨을 거두자 아테네의 정계에는 선동자(데마고그)들이 득세했고 우중정치가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정치의 리더는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유도’하지만 우중정치의 리더는 민중의 마음속 불안을 ‘선동’한다”고 분석했다. 아테네의 국정은 이 선동자 그룹에 의해 좌우되었지만 그들은 발전적인 비전을 내놓기보다 비판만 일삼고 장기적인 시작과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이들은 아테네 정계 근처를 배회하며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자극해 잘못된 고민과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페리클레스 이후 등장한 양대 정당은 대립하기 바빴고, 시민들은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었다. 이처럼 불안정한 정권이 군사적, 정책적 실패를 거듭하자 아테네 시민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두고 “형태는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혼자 통치했다”고 평가했다. 어떤 관점에서는 독재와 비민주의 요소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테네는 장기적인 발전 과제를 두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아테네는 그러지 못했다.

    급기야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정치를 버리고 ‘400인 정권’ ‘5,000인 정권’ 등 과두정치를 내세웠지만 이는 길게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민주정치로 돌아갔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자 아테네의 국력은 전진하기보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향해 공세를 펼쳤다. 특히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공격하는 스파르타를 여러 방면으로 원조했고,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테네의 병력을 빼오기를 서슴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대목에서 “그리스인의 민족정신이 약화되었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아테네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가치관의 근간을 포기했다.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에 포위당한 동맹국의 원군 요청을 묵살하거나 동맹국에 부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맹주로서의 신의(信義)를 잃었고, 반란을 진압하면서 불필요한 살육을 자행하여 양식(良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의 그리스 세계를 두고 “아테네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전체가 양식이 없는 사람들로 변해버렸다”며 한탄한다. 1권에서 이미 예고한 대로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결국 그리스의 중심이자 ‘본보기’였던 아테네는 ‘본보기’이기를 포기한 채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스인 이야기 Ⅱ』가 그리고 있는 아테네와 민주주의의 쇠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세계와 민주주의에 드리운 그림자는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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